자라자. 함께.
김창준님의 저서 함께 자라기 - 애자일로 가는 길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정말 특별한 책인데요, 제 인생 첫 직장 생활에서의 첫 사수분께서 선물해주신 책이랍니다. 스타트업에서 개발 인턴을 했는데 퇴사할 때 책을 선물로 받았어요. 선물 받고 읽은 지는 한참 됐지만 이제서야 글을 쓰는 게으른 나... '함께 자라기' 라니... 책 받았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 완벽한 제목을 가진 책이 있다니!!' 였습니다. 블로그에서 닉네임으로 쓰고 있는 자라자와 찰떡궁합이니까요.
더불어 이 책은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와도 연관이 있었습니다. 저자 김창준 님이 이전에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멘토셨다고 해요. 지금은 멘토를 안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분이 계실 때 지도를 받았다면 또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쌓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네요.
어떤 책인가
야생적으로, 공동체와 함께 학습하는 방법에 대해 배웁니다. 책의 구조 자체가 A에 관해서는 B를 해야 한다!와 같이 명시적으로 주장을 펼치는 책은 아니고, A라는 내용을 얘기할 때 사례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던져 줍니다. 마음 속에 애자일의 씨앗을 심어주는 책이기도 해요. 스스로 성장하는 법, 성장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법, 애자일에 대해 다룹니다.
생각하는 메커니즘을 발전시키자
책의 1부 '자라기'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특정한 일을 잘하는 방법에 집중하는 것보다, 특정한 일을 잘하는 방법을 잘 생각하는 방법에 의도적인 수련을 하는 것이, 복리적인 성장을 가져온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예전에 수능 국어 공부를 할 때, 시간 압박과 정답률에 대한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읽기에 관해 굉장히 집요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글을 이해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서, '나는 어떤 상태에서 글을 빠르고 정확하게 가장 잘 이해하는가'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죠. 글을 읽을 때 속으로 발음을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눈을 어떻게 위치시키는 것이 좋은지, 손은 어떻게 보조하는 것이 좋은지, 글을 읽을 때와 문제를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이 좋은지를 계속 실험했습니다. 타이머를 켜고 문제를 풀고, 정답률을 체크하고를 무한 반복하며 여러 변인들을 통제하고 실험해보면서... 나만의 최적의 자세를 찾아 헤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결국 나만의 최적의 자세를 찾았고, 수능 당시 1등급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돌이켜보면 1차적인, 특정한 일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 지나치게 집요하게 파고 들었던 것 같아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계도함수라고 해야 할까요, 자신을 가장 똑똑한 상태로 만들고 지치지 않도록 잘 쉬는 방법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나는 어떤 상태일 때 가장 똑똑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어떻게 쉬었을 때 '정말로' 휴식이 되는지를 기록하고 실험해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휴식은 바른 자세로 17분 정도 눈 감고 누워 있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더라구요. 유튜브를 보거나 웹 서핑을 하는 것은 정신적 쾌감은 주지만, 육체와 정신이 온전히 회복되는 행위는 잠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결국 모든 능률의 근원은 생각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쉬는 방식 이 세 가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향을 잘 잡고, 게으르지 않고, 지치지 않는 사람이 가장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방식을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예민하게 나를 측정해가면, 어제보다 조금 더 현명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현명해진 내가 기존의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면 다시 새로운 효율적인 방식들을 생산합니다. 이를테면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키보드를 조작하는 과정, 어떤 프로그램으로 글을 쓰고 백업을하고 포스팅을 하는 지 등등의 방식이 최적화되어있는데, 가끔은 이렇게 공을 들였다는 효능감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함께 살아가기
개인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속에서 타인과 어떻게 소통하는가, 나는 공동체와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성장하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그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성장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요.
(159p) 뛰어난 팀이라면 거의 한 팀도 빠지지 않고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이 몇 가지 있었는데, 삼투압적 의사소통이 거기에 속합니다. 이것은 '배어드는' 소통방식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유리하겠죠. 예를 들어, 프로그래밍하다가 "저기 이거 뭐뭐안 되는데 아는 사람 있어요?"라고 외칩니다. 테이블 건너편에 있던 디자이너가 답을 해줍니다. 옆에 앉아 자기 일을 하던 기획자는 프로그래머 둘이 하는 대화를 우연히 듣습니다. 그러다가 "아, 그런 문제가 있었나요? 저는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끼어들어 새롭고 가치 있는 정보를 줍니다.
이 부분이 소통의 핵심인 것 같아요. 같이 있는 것. 물리적인 거리는 심리적인 거리와 같이 가는 것 같아요.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고, 자주 의견을 교환하고, small talk을 자주하는 것이 더 좋은 팀을 만듭니다.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를 진행하면서도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연수센터에 나오는 것은 완전히 자유이지만(풀 재택근무를 하는 팀도 있지만), 저희팀은 고정적으로 월화수목금 10시에 출근을 했어요. 평일엔 매일 얼굴을 보고 같이 밥을 먹고, 한 테이블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저는 매일 오가는 거리가 부담되어 고시원까지 살아가면서(!) 물리적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을 유지했어요. 개발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함께 고민해보고, 새로운 기능이 필요하면 함께 계획해보면서 서로가 생각하는 방식을 조금씩 동기화시켰습니다. 재미있게도 중간 발표 시점에는 세 명 중 아무나 골라서 발표를 시켜도 될 정도로 모두가 프로젝트에 애정을 가지고 즐겁게 진행했던 것 같아요.
이런 물리적 거리의 중요성은 일을 하는 그룹 내에서 뿐만 아니라 가족, 연인 등 모든 인간 관계에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일 저 일 때문에 바쁜 척을 하며 미뤄왔던 만남들도 가지면서 소통하며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네요.
앞으로 나는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 허준이 교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중
올해 읽었던 글 중 울림이 있던 글의 일부를 가져와봤습니다. 이번 1년에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내년에는 훨씬 더 다이나믹하게 인생이 변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잠깐의 휴식기인데요, 꿈이 더 커지고, 미래 계획을 세워보고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지는 모르지만, 영어 공부와 알고리즘 풀이 관련해서는 자유로워져야 그 이후의 것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당분간은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를 측정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겠지만 그 과정이 '그럴듯한' 인생을 향한 것이 아니기를, 성장 속에서 온전한 나를 경험하기를 스스로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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